니우 메이위(제1저자, 목원대학교 박사과정)

조혜정(교신저자, 성신여자대학교 초빙교수)

머리말
현대 중국의 추상미술
중국 추상미술의 태동
중국 추상미술의 전개와 단절

III. 시점에 의해 변화하는 딩이의 ‘十’자 추상회화

의 형성과 전개

‘十’자 추상회화의 태동-평시(平視)단계(1980-1998)
‘十’자 추상회화의 발전-부감(俯瞰)단계(1999-2012)
‘十’자 추상회화의 형성-앙시(仰視)단계(2013-현재)
맺음말

머리말

딩이(丁乙, 1962- )는 중국 동시대 추상회화의 선구자이자,¹ 중국 85신사조 미술운동(85 New Wave movement, 약칭: 85 신사조)의 구성원으로²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추상 화가이다.³ 그는 지난 30여 년간 ‘十’ 자 및그 변형인 ‘X’ 자를 주요 기호로 한 추상 작업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십시(十示)’라는 시리즈 명에 제작연도를 더해 <십시 2007-10>과 같은 제목으로 불린다.⁴딩이의 화면에 시종 등장하는 ‘十’ 자는 그가 20대 초반 공장에서 포장디자이너로근무하며 자주 접한 인쇄물 사이즈를 표기하는 기호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신의작품에 등장하는 ‘十’ 자 기호는 어떠한 문화적 지향성도 미적 가치도 지니고 있지않기 때문에 무제한 복제 가능하고 끝없이 파생될 수 있다고 여겼다. 딩이는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十’ 자를 자신의 작업이념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부호로 채택하였다.⁵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유럽·일본 등지로 유학을 통해 서구 현대미술 사상과 형식을 받아들여 추상회화를 실험한 일군의 작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중일전쟁(中日戰爭)⁶·국공내전⁷ 등 혼란을 겪으며 추상회화의 발전은 정체되었고, 특히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공산당의 정치노선에 따라 문예방침에 있어 사회주의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를 표방하며 더 이상 공식적으로모더니즘 미술실험을 전개해 나갈 수 없게 되었다.⁸ 이후 1978년 덩샤오핑(邓小平, 1904-1997)에 의해 추진된 개혁·개방 정책으로 창작 활동에서의 제약이 완화되며,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추상미술이 다시금 꽃을 피워 나갈 수 있게되었다. 그러나 딩이는 당시 중국 미술계의 다소 과열된 서구 현대미술에 대한 맹목적이고 급진적인 수용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냉정하고 이성적인 자세로 자신만의 창작 노선을 모색했다. 그 결과, 딩이는 본인에게 있어 어떠한 지향성도 지니지 않은 ‘十’ 자 기호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기법을 확립하였다.⁹ 그는 ‘十’자 기호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과 언어를 고안하여,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차원적인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딩이가 지난 30여 년 동안 ‘十’ 자 기호를 중심으로 전개해온 창작 과정과 변화에 대해 살펴본다. 그의 작업은 작가의 경험과 시점의 변화에 의해‘평시 단계(1980-1998)’·‘부감 단계(1999-2012)’·‘앙시 단계(2013-현재)’의 세 시기 나눌 수 있다.¹⁰ 평시 단계에서는 기계적인 정확도를 위해 자와 같은 도구를 활용하여 형식적인 정밀함이 돋보이는 ‘十’ 자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중국의 빠른 도시화로 인해 생겨난 도시의 변화에 대한 작가 고유의 시각을표현하였다. 도시의 네온사인을 연상케 하는 자극적인 색감을 사용하여 고층 빌딩위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야경과 변형된 도시의 지형도를 추상적인 언어로 담아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간 고수해온 평면 회화의 형식을 벗어나 목판화 기법과회화를 결합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다. ‘十’ 자 기호의 윤곽선이 모호해졌으며,색의 명도와 채도를 낮춰 과도한 시각적 자극을 피하고자 했다. 작품의 주제에도변화가 나타나는데, 도시화를 포함한 사회현상에 대한 반성을 넘어 보다 거시적인관점에서 인류 보편적인 문제에 주목한다.

현대 중국의 추상미술

한국과 중국 현대미술의 발단은 ‘서구로부터 수용’이라는 유사한 배경을 지녔다. 수용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한국의 경우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라는특수한 시대 상황 속에서 일본을 통한 간접적 수용만이 가능했던 것에 반해, 중국은 서구로의 유학을 통해 직접 수용하였다. 이를 발판 삼아, 중국 본토에서는 서구 현대미술의 이념과 형식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모여 모더니즘 미술실험을 전개했다. 한국 화단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추상미술이 주류적 위치를 차지했던 것과 달리, 중국의 경우 1949년 공산당이 이끄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며 체제선전에 용이한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주요 창작 노선으로 채택되며 창작자의 개성과 감정 표현을 중시하는 추상미술은 제도권에 의해 배척되었다. 이처럼 공식적인 차원에서의 모더니즘 미술실험은 단절된 듯 보였으나, 일찍이 1930년대부터 모더니즘 미술이 꽃을 피웠던 상하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소수 작가들에 의해민간 차원에서의 실험은 묵묵히 이어져왔다.

중국 추상미술의 태동

19세기 중엽, 한때 동아시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던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며 국력이 점점 쇠퇴하였다. 이어서 안팎으로부터 연이은 고충을 겪으며 중국내부에서 근대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청나라 말기부터진보적인 지식인들에 의해, 중국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서구의 선진 과학 기술을받아들여 부국강병을 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하며 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은 청나라는 정치·경제·군사·교육 등 분야에서전 방위적인 변화를 모색하게 되고, 이러한 국면 속에서 중국은 서구 문물 수용을중심으로 한 노선을 채택하며 본격적인 변혁을 추진한다.

이 같은 흐름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세기 초 많은 중국근·현대 미술의 선구자들은 프랑스와 일본 등지로 유학을 떠나 서양 문화를 배우고자 했다.¹¹ 이 중, 프랑스에서 유학한 린펑미엔(林風眠, 1900-1991)·우다위(吳大羽, 1903-1988), 일본에서 유학한 리슈통(李叔同, 1880－1942) 등에 의해 인상파·야수파·표현주의·초현실주의 등 미술사조가 중국 내에 소개되며 중국에서모더니즘 미술운동이 태동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개항하기 시작해 국제적이고 개방된 면모를 갖춘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시도들이두드러졌는데, 대표적인 활동으로 1931년 9월 프랑스에서 유학한 방쉰친(庞熏琹,1906-1985)과 일본에서 유학한 니이더(倪贻德, 1901-1970) 등 화가들이 모여 조직한 미술단체 ‘결란사(决澜社)’의 활약을 꼽을 수 있다. 1932년 첫 번째 단체전에서 결란사 선언과 강령을 발표하며 정식 활동을 시작하였고, 총 4차례의 단체전을통해 서구 모더니즘을 적극 수용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재해석한 실험의 결과들을선보였다.

중국 추상미술의 전개와 단절

20세기 초, 서구로부터 영향을 받아 태동한 중국의 모더니즘 미술실험은 나라안팎의 난국으로 인해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한다. 절체절명의 국난 위기 속에서창작자의 개성과 감정 표출을 중요시하는 모더니즘 미술은 사치와 같이 여겨졌다.앞서 언급한 모더니즘 미술 단체인 결란사의 경우에도 전쟁으로 인해 정치·경제등 외부환경이 불안정해지며 미술품 유통 또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작가들은 창작의 동력을 잃게 되었고 1935년 자진 해산에 이른다. 당시 문화예술은‘구국(救國)’ 이라는 대의를 위해 대중들을 촉구하고 호소하는 선전도구로 전락하였는데, 이러한 시대상에 따라 대중들에게 별도의 설명 없이 직접적으로 내용 전달이 가능한 사실주의 미술이 선호되었다. 반면 비재현적인 언어의 추상미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시대적 요구와도 부합하지 않다 여겨지며 점점 설자리를 잃었다. 특히,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며 공산당의 정치노선에 따라 문예방침에 있어 사회주의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를 표방하며 모더니즘 미술은 더 이상공식적 차원에서 전개해 나갈 수 없게 된다.¹² ‘문화예술은 인민에게 복무해야 한다’라는 새 시대의 요구에 맞춰, 제한된 주제와 표현형식만이 받아들여졌고, 작품안에서 창작자 개인의 자율성과 감정표현은 배제되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 모더니즘 미술의 진원지 격인 상하이에서는 이전만큼 활발하게는 아니지만, 새로운 미술을 향한 활동들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고 이어져나갔다.¹³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초기, 심지어는 문화대혁명의 암흑기에 이르러서도 민국시대(民國時代)에 진행되었던 모더니즘 미술실험이 암암리에 이루어졌다.¹⁴ 린펑미엔·우다위·관량(關良, 1900-1986) 등 상하이에 거주하는 화가들은 계속해서 창작을 이어가고 후학을 양성하며 비공식적인 활동을 지속했다. 문화혁명 후기 상하이에서 소위 ‘지하(地下)추상’ 현상이 나타났는데, ¹⁵ 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추상미술이 다시금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어 나가는데 발판이 되었다.¹⁶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1979년 상하이에서 개최된 《12인화전(十二人畫展)》¹⁷·《현대회화 6인 단체전(現代繪畫六人聯展)》¹⁸, 그리고 미술단체 ‘차오차오셔(草草社)’의 활약을 들 수 있다.¹⁹

1978년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한 자유로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창작 활동의제약이 완화되었고, 추상미술 실험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공개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새로운 정치 환경은 중국 현대미술의 다원화된 발전을 이끌어 냈는데, 당시 예술가들은 문화혁명이라는 과오에 대한 반성과 각성의 의미로 사상해방을 외치며 이를 주제를 한 작업을 내보였다. 제한된 주제만을 다뤄야 했던 과거와 달리, 예술가들은 개인 자격으로 정치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생각을 표현할 수있게 되었다. 한편, 서구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동시다발적으로유입되며 새로운 미술에 대한 열망을 고조시켰고, 그 영향으로 중국 최초의 아방가르드 미술단체인 싱싱화파(星星畫派)가 탄생한다.²⁰ 이들은 문화혁명 시기 금지되었던 추상회화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선보이며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어 등장한 전위미술 운동인 85신사조에서도 새로운 예술 추구의 일환으로 추상미술 노선을 택한 일군의 작가들이 있었다. 1985년 이후의 중국 현대 추상미술발전에 있어 유의미한 전시로는 1986년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1회 상하이청년미술대전(首屆上海青年美術大展)》·《CO추상화전(CO抽象畫展)》·《비구상화전(非具像畫展)》이 있다.²¹ 이후 상하이를 중심으로 ‘순수 추상’을 추구하는 흐름이 일어났는데, 이러한 움직임의 대표적인 인물로 딩이를 꼽을 수 있다. 딩이는 1988년상하이미술관에서 열린 추상미술 전시인 《금일예술전(今日藝術展)》에서 자신의대표작인 <십시> 연작을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다.²² 중국 현대 추상미술이 상하이에서 시작되어, ‘공식적 차원’에서의 공백기를 지나 다시금 상하이에서 부흥한 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닌 ‘비공식적 차원’에서 단절 없이 지속된 노력과 실험의결과라 할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에도 중국 화단에서 추상미술이 주류적 위치를 점한 적은 없다. 또한 2000년대 중반을 전후로 전 세계를 휩쓴 ‘중국 현대미술’ 붐 속에서도 주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들이 주로 주목 받았기 때문에, 중국의 추상미술이 중국 내부적으로는 물론이고 해외무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고수하며 꾸준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개인적인 역량에 힘입어 현대 중국의 추상미술이 지금과 같은 성숙한 단계에 이를수 있었다.

시점에 의해 변화하는 딩이의 ‘十’자 추상회화의 형성과전개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영향에서 시작된 딩이의 ‘十’ 자 회화는 중국 도시화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담아내는 매개로 변화되었다. 또한 현재는 작품을 통해 작가 자신의 삶과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단순 작가 개인의 삶을 넘어서, 중국 추상미술 발전의 축소판이자, 동시에 1980년대 이후 중국의 도시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²³

十자 추상회화의 태동–평시 단계(1980-1998)

1962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난 딩이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았다. 1978년 고등학교 재학 시절 상하이에서 열린 《19세기 프랑스 농촌 풍경화 전시회(十九世紀法國農村風景繪畫)》에서 처음으로 서구 인상파와 야수파의 원작을 접하며 서구 모더니즘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²⁴ 1980년 상하이 공예미술대학(上海工藝美術學校)에 입학하여 중국 1세대 전위예술가인 위요우한(余有涵, 1943- ) 교수의 영향으로²⁵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작가들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었다.²⁶ 이후 ‘차가운 추상’의 대표화가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과 미니멀리즘 작가인 프랭크 스텔라(Frank Philip Stella,1936- )의 영향을 받아 형식적인 정밀함이 돋보이는 ‘十’ 자 추상회화를 추구하기시작하였다.²⁷ 1986년 작품인 <금기>에서 처음으로 ‘十’ 자 기호가 등장하였고, 같은 해 상하이대학교(上海大學美術學院) 미술학과에 입학하며 ‘十’ 자 기호를 매개로 한 창작이 본격화되었다(도1).

중국에서 현대미술 실험은 개혁·개방 이후 1980년대 들어서 비로소 본격화 되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중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인 리시엔팅(栗憲庭, 1949- )은“문화예술의 본질에 대한 반성이자, 글로벌 미술, 특히 서구 현대미술을 근간으로삼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라고 평가했다.²⁸ 1978년 이후 베이징을 중심으로 전개된 전위미술 운동인 싱싱화파·차오차오셔·85 신사조등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공식적으로 단절되었던 추상미술 실험이 재개되었다.비록 딩이 역시 한때 85 신사조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휩쓸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당시사회적 상황에서 벗어나 이성적이고 순수한 추상회화를 추구하였다.

평시 단계로 불리는 1980년부터 1998년까지의 작품에서는, 테이프·자·룰링펜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인쇄물과 같은 정밀함을 추구하였다(도2). 이 시기의 작품들은 딩이가 ‘회화를 회화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실험한 결과물이다.²⁹ 즉, 그의 목적은 ‘기교’와 같은 회화적 특징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딩이는 디자인이 지닌 차가운 속성에 회화 고유의 표현성을 접목하고자 했는데, 그러한 실험의 과정에서 ‘十’ 자의 변형인 ‘X’ 자 기호가 동시에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기호들은 1980년대 중국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딩이는 모방론에 근거한 고전주의 이념과 형식을 거부하고, 순수 조형요소를 근간으로 하는 추상미술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十’·‘X’ 자 기호를 채택한 것으로, 그 외의 어떠한 사회적 함의나 은유도 담고 있지 않다. 즉, 이러한 기호들은 정밀함과 이성적 절제가 돋보이는 화면을 추구하는 작가의 형식주의적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딩이는 회화성을 배제한 이성적이고 정밀한 화면을 구현해 내기 위해 자와 같은 도구를 적극 활용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창작 방법은 고도의 집중력과 절제력을 요하기 때문에 육체적 부담을 가져왔다. 허리를 굽히고장시간에 걸쳐 그림을 그리는 자세로 인해 신체의 무리가 왔고, 딩이는 결국 도구 사용을 포기하고 연필·분필·목탄·볼펜·유성물감·아크릴 등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새로운 기법을 모색한다. 또한 캔버스 외에 수채화 용지·골판지·린넨·패브릭 등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여러재료 위에서 실험을 이어나갔다(도3). 이 같은 기법과 재료의 변화를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소 차갑고 절제되었던 화면 위에 작가의 감정과우연적 요소가 등장하였다.

도구 사용 없이 그린 <십시91-4>는 규칙적이고 계산된 듯한 기존의 작품과 달리, 길고 짧고 두껍고 가는 다양한 선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작가의 감정 변화와 행위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의 주관적 요소가 등장하지만, 왼쪽에서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모호하게 그려진 흰색 점선으로 인해 기존 작업에서 보여 주었던 화면 전체의 질서감과 통일감은 유지되고 있다. 반복적으로 겹쳐진 격자와 수평·수직 및 사선이 서로 교차하며 공간감을 만든다.이러한 변화에서 출발해, 딩이는 도시 풍경에 의거해 ‘十’ 자 기호들을 새롭게 조합해 배치하는 부감 단계로의 전환을 도모한다.

딩이의 추상회화 작업의 첫 번째 과정인 평시 단계에서의 보여주었던 형식은 서구 현대 추상미술과 중국 내에서 일어났던 85 신사조의 영향을 받아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딩이는 무비판적인 수용 혹은 답습이 아닌,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기법과 언어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다. 초기의 ‘十’ 자 회화에서는자와 같은 보조 도구를 사용하여 이성과 절제된 욕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후육체적 부담으로 인해 도구 사용을 포기하고, 움직임에 몸을 맡기는 자유롭고 표현적인 화법으로 전환하며 딩이의 화면에는 ‘이성’과 ‘감성’이 공존하게 된다.

十자 추상회화의 발전–부감 단계(1999-2012)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시대로 진입하며 전례 없는 경제발전과 시대전환을맞이한다. 1980년대 초부터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추진된 중국의 도시화는 199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화되었고, 당시 이러한 변화는 작가들의 창작 환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딩이의 작업실이 자리하던 상하이 외곽 지역에도 개발바람이불어왔고, 결국 2000년을 전후로 하여 상하이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쑤저우허(蘇州河) 강변으로 작업실을 옮긴다.³⁰

역사적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경험했듯, 작업환경의 변화는 창작에도 직접적인영향을 미친다.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도심 가까이의 강 유역으로 작업실을옮기며 딩이는 자신이 직접 마주하게 된 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부감’의 시점으로‘재현’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같이 창문 너머의 눈부시게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며 형광색이야말로 상하이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색감 임을 발견한다. 높은빌딩과 네온사인이 어우러진 상하이의 야경은 중국 최대 경제도시로서의 면모를십분 보여준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의 변화로 인해 1999년 이후 딩이의 작품 속에는 강렬하고 선명한 형광색이 빈번하게 등장하며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그는 자신이 관찰한 도시의 경관을 다양한 명도의 색상과 복잡한 구도의 조합을 통해 ‘재현’ 하였다. 단순한 기호와 색채의 조합으로 구성된 추상평면회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고전 회화의 특징인 투시감도 동시에 나타난다. 또한 규칙을머금은 듯 불규칙한 화면을 가로지르는 사선 구조는 이차원의 평면에 운동감을 부여한다. 두 번째 단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추상적 조형언어를 구사하지만, 그 속에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상업화의 분위기가 점점 짙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와성찰이 담겨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인 <십시 2007-10>은 명도가 높은 초록과 노란색 계열의 다양한 색상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고층 빌딩에서 부감으로 내려다본 네온 불빛과 교차로가 뒤엉켜 있는 상하이의 도시 야경을 연상케 한다(도4). 또다른 작품인 <십시 2011-7>은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도시경관을 표현한 것으로, 중심부에서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十’ 자로 구성된 격자무늬는 도시화 과정에 따라 확장해가는 도시 지형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앞서 장시간의 도구 사용을 통한 창작 방법으로 인해 신체에 무리가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오랜 기간 눈에 강렬한 자극을 주는 형광색의 사용으로 인해 시력 문제가 발생한다. 또 한 번 신체의 한계에 직면한 딩이는 이를극복하기 위해 2011년 이후 ‘흑백으로의 회귀’라는 전환을 모색하며, 흰색·검은색·회색 등 무채색을 주로 사용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도5). 앞선 평시 단계에서 딩이는 ‘十’ 자 기호를 통한 순수한 추상미술을 표방했다면, 부감 단계에이르러서는 추상적 형식을 빌러 ‘도시화’라는 현실을 그려냈다. 기호와 색채의 구성과 조합을 통해 평면 위에서 펼쳐졌던 형식주의 실험이 막을 내리고, 화면 너머의 현실에 주목하고, 그 안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고 작품화하는 ‘리얼리스트’로 거듭난다.

이 시기의 작업은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그러나 동시에 세상과교감하고 싶은 작가의 내적 갈등과 열망이 교차하고 있다. 또한, 그간 다뤄온 평면회화라는 매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그것을 초월하고 싶은 욕구가 뒤섞여 있다. 그는 형광 초록·형광 노랑·형광 주황·형광 분홍의 네 가지 색상을 원색 그대로가 아닌 여러 가지로 조합해 사용하였다. 이는 우선적으로는 형광 염료의 종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었지만,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한계와 제약에 부딪혔을 때이를 극복하고 컨트롤해 가는 과정 속에서 창작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믿었기 때문이다.

十자 추상회화의 형성–앙시 단계(2013-현재)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앙시 단계의 작업에서는 시점의 변화 외에색채·재료·기법 등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우선, 2013년을 전후로 하여 화면에 반영된 시점이 ‘부감시’에서 ‘앙시’로 바뀌게 된다. 시점의 전환은 작가의 경험과 세계관의 확장에 따른 것으로, 중국을 넘어 본격적으로 해외무대에서활동하며 생겨난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딩이는 ‘상하이의 도시화’ 라는 지역 특수성의 협의적인 주제를 넘어 보다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보다 넓은 세계를 접하며, 세상을 지그시 내려다보는듯한 전지적 관점이 반영된 부감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과 동경을 담아 우러러보는 ‘앙시’의 시점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딩이의 화면은 광각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듯 한 광활한시야를 담게 된다.

이어서, 2014년을 전후로 기존의 평면 회화에 목판화 기법을 결합한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며, 화면 위에 입체감과 공간감이 더해진다.³¹ 딩이는 판화 작가로부터목판화 기법을 전수받아, 가벼우면서도 치밀하며 가공이 용이한 피나무를 재료 삼아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³² 우선 피나무 판위에 형광 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그 위에 검은색 혹은 흰색을 겹겹이 칠한 후, 칼과 같은 뾰족한 도구를 이용하여 긁어바탕색이 나오게 표현하는 스크래치 기법을 활용해 네모난 점과 같은 간단한 문양을 새겨 넣는다. 조각하여 패인 표면 위에 선명한 필치가 더해져 화면 전체에 풍부한 공간감과 뚜렷한 구조감을 조성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작품에서는 지난 30년간 시점의 변화와 무관하게 꾸준히 등장한 ‘十’ 자 기호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난다. 2019년 이후, 그간 뚜렷하고 명확하게 묘사되었던 ‘十’ 자의 윤곽선이 마치 근시를 가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과 같이 흐릿하고 모호해졌다. 이는 시력감퇴라는 신체적 한계와 내면적 성찰에서비롯된 것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반영한 것이다.³³ 작품 <십시2019-13>·<십시2020-25>에서 보이듯, 윤곽이 불명확해지며 ‘十’ 자 기호는 마치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아우라를 발산한다(도6, 도7).

맺음말

딩이는 지난 30여 년간 시종일관 ‘十’ 자 기호를 중심으로 한 추상회화를 탐구해왔다. 딩이의 추상미술 실험의 첫 번째 과정인 평시 단계에서는,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본격적으로 유입된 서구 현대미술을 접하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추상 언어를 추구하는 형식주의 화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중국에서 대대적인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그 영향으로 딩이의 실험은 캔버스를 넘어 눈앞의 현실로 향한다. 즉, 자신이 처한 환경이 달라지자,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에도 변화가 나타났고, 그로 인해 화가인 그가 현실을 화폭에 담아내는 시점도 전환된다. 부감 단계로 일컫는 시기의 작품에서는, 도시화로 인해 등장한 고층 빌딩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야경과 변형된 도시의 지형도를 추상적인 언어로 담아낸다. 앙시 단계로 분류되는 2013년 이후 작업에서는 색채·재료·기법적으로 다양한 변화와 실험을 보여주었다. 목판화의 기법을 회화에 적용하며 화면에공간감과 입체감이 나타났고, 시력 저하와 내면적 성찰, 가치관의 전환 등 내·외적으로 여러 상황을 겪으며 작품의 형식과 주제의 변화를 가져왔다. 도시화라는 중국 현대사의 특수한 주제를 넘어 시대와 지역을 넘어선 인류 보편의 가치에주목한다. 딩이가 지난 30여 년간 추구한 추상미술로의 여정은 한마디로 ‘형식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차가운 추상’에서 ‘뜨거운 추상’으로의 전환이라 형용할수 있다.

서구에서 추상미술은 미술의 오랜 과제였던 ‘현실의 사실적 재현’을 부정한 모더니즘의 전개 과정에서 탄생한 새로운 경향의 미술로, 구상미술과 상반되는 반사실적이고 비재현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반면 딩이의 추상회화에서 추상과 구상은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동시에 공존한다. 몬드리안과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을 접한 후, 당시의 복잡한 시대상과 당시 중국의 회화적 관습에서 벗어난 순수 추상을추구했다. 그러나 이내 ‘도시화’라는 급변하는 시대상과 마주하며, 또한 그로 인해 자신 역시 직접적인 변화를 겪게 되며 더 이상 ‘시이불견(視而不見)’, 즉 보고도못 본 척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딩이는 앞서 십여 년간 ‘十’ 자 기호를 기반으로 구축해온 고유의 추상 언어에 현실에 대한 깊은 관찰과 성찰적 태도를 담은,즉 ‘형식적 추상’과 ‘태도적 현실주의’가 공재(共在)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평면 위에서 시작해 눈앞의 현실로 확대된 딩이의 추상미술 탐색은 오랜 창작활동으로 인한 육체적 한계와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 내면적 성찰이 더해지며, 목하의 삶을넘어 인류 보편적 주제에 주목한다. 그의 화면에 나타나는 시점의 변화, 즉 평시에서 부감시로, 이어서 앙시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는 딩이의 30여 년의 창작 여정외에 중국 현대 추상미술이 걸어온 길, 나아가서는 현대중국의 궤적이 담겨있다.

1 딩이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2001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2002년 《광저우(廣州)트리엔날레》·2019년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에서 개최한 《도전하는 영혼(The Challenging Souls): 이브 클랭·이우환·딩이》전등에 참여한 바 있다.

2 85 신사조 미술운동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내 본격적으로 유입된 서구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영향으로 시작된 전위미술 운동이다. 1985년을 전후로 중국 전역에서 일어난 수많은 전위미술 단체의통칭으로, 중국의 몇몇 평론가들에 의해 명명되었다.

3 딩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85 신사조의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85 신사조의총결산으로 여겨지는 1989년 중국미술관에서 개최된 《중국현대예술대전(中國現代藝術大展)》에 초대되어추상회화 작품인 <십시>연작을 전시한 바 있다. 또한 85 신사조의 일환으로 1986년 상하이에서 열린 《요철전(凹凸展)》을 통해 행위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딩이는 당시 85 신사조의 주류적인 위치에서 활동하기 보다는 동·서양의 다양한 미술사조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작언어를 확립하는데 주력했다. 上海明圓美術館 홈페이지 https://www.trueart.com/news/224585.html (최종검색일:2022. 7. 3).

4 본고에서 중국의 인명·지명은 중국어 원어발음으로, 작품명은 한국어 발음에 의거해 명기했다.

5 盧迎華, 「十字體——對丁乙創作歷程的回顧性解讀」, 『文藝理論與批評』 1(2021), pp. 108-109.

6 중일전쟁은 1937년 7월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 전 국토에서 전개된 전쟁을 의미한다.

7 국공내전은 1927년 4월부터 1950년 5월까지 일어난 전쟁으로, 중국 재건을 둘러싸고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국내전쟁을 뜻한다. 전쟁의 결과로 중국 본토에는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었으며, 장제스(蔣介石, 1887-1975)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은 난징에있던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베이로 이전하였다.

8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소련에서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에 제창되고 1934년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대회에서 채택된 창작방법론으로, 프롤레타리아 해방 등 사회주의에서 중요시 하는 가치를 주제로 한다. 畢燃, 「“社會主義現實主義”創作方法在中國的傳播與接受」, 『青年文學家』 21(2014), pp. 11-13.

9 Mathieu Borysevicz, 탄궈빈(譚國斌) 역, 「十示——對話丁乙」, 『2013 藝術長沙：丁乙』(湖南美術出版社,2013), p. 134.

10 딩이는 지난 2019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지난 작업세계를 회고하며 ‘시점’의 변화에 따라 평시 단계·부감 단계·앙시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추상회화를 표방하는 작가가 산수화에서 원근을 나타내는 삼원법(三遠法)에 의거해 시기를 구분한 이유를 직접적으로 밝힌 바는 없지만, 그가 추상화가로활동하기 전에 동양화를 먼저 접했던 배경과의 연관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石薇薇, 「丁乙：“十”刻准備著新的可能」, 『藝術外灘ARTBUND』(2021. 12. 17).

11 근대 중국의 유학 조류는 1870년에 시작되었고, 청나라 정부는 1896년부터 일본에 유학생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언어적 유사성’·‘지리적 근접’·‘저렴한 유학비용’ 등의 유리한 조건 때문에 많은 중국인들이 일본유학을 택했지만, 일본 유학을 통해 일본 문화를 배우려 하기보다는, 일본을 통해 서양 문화를 배우고자했으므로, 서양화 전공자가 대세를 이루어 약 80%의 비율을 차지했다. 류샤오루·이보연, 「20세기 중국의미술 유학생」, 『인물미술사학』 9(2013), pp. 247-267.

12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은 소련에서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에 제창되고 1934년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 채택된 창작방법론으로, 프롤레타리아 해방 등 사회주의에서 중요시 하는가치를 주제로 한다. 畢燃, 「“社會主義現實主義”創作方法在中國的傳播與接受」, 『青年文學家』 21(2014), pp. 11-13.

13 朱其, 「重啟現代主義（1979-1985）」, 『前衛·上海——上海當代藝術30年文獻展（1979-2010）』(2017).

14 중국에서는 1912년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까지의 중화민국의 지배시기를 ‘민국시대’라 일컫는다.

15 특수한 시대적 배경하에 제도권 내에서 공식적으로 모더니즘 미술실험을 전개해 나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비공식적으로·비합법적으로 숨어서 활동한 추상미술 실험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16 朱其, 앞의 논문.

17 1979년 상하이에서 개최한 《12인화전》은 문화혁명 이후 민간차원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현대미술 전시로,자신만의 독창적인 회화를 추구하는 열두 명의 화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黃阿忠, 「紀念改革開放40周年：《十二人畫展》前後」, 『中華藝術宮』(2018. 8. 20）.

18 1985년 상하이에서 푸단대학(復旦大学)에서 개최한 《현대회화 6인 단체전》은 상하이 공예미술대학 출신의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한 전시로, 서구 모더니즘 미술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6인의화가 딩이·위요우한(余有涵, 1943- )·친이펑(秦一峯)·왕구칭(汪谷青)·아이더우(艾得無)·펑량홍(馮良鴻)의 작품을 선보였다. 許德民·龔雲表, 「上海抽象藝術現狀和發展趨勢」, 『都市文化與都市生活——上海、紐約都市文化國際學術研討會論文集』（中國學術期刊電子出版社, 2018）, p. 167.

19 차오차오셔(草草社)는 1980년 상하이에서 취더슈(仇德樹)에 의해 설립된 아방가르드 미술단체이다. 그러나 같은 해 중국공산당이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였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함에 따라, ‘사상적 오염’을 정화해야 한다는 물결이 일어났고, 그에따라 차오차오셔의 활동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산되었다.차오차오셔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상하이에서 개최한 《80년대 회화전》이 있다. 이 전시에는 취더슈·천쥐웬(陳巨源)·궈룬린(郭潤林) 등이 참여했다. 袁龍海, 「仇德樹：“裂變”就是我修行的“道”—解讀 “裂變”藝術」, 『筆下情緣：袁龍海美術評論集』（西泠印社, 2012）, p. 65.

20 싱싱화파는 1978년 탄생한 중국 최초의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의 명칭이다. 마더셩(馬德勝)·황루이(黄睿)가 공동 설립했으며 대표적인 참여 작가로는 왕커핑(王克平)·취러레이(曲樂蕾)·아청(阿成)·아이웨이웨이(艾未未) 등이 있다. 1979년 말, 베이징 중국미술관 동쪽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서 제 1회 《싱싱미전(星星美展)》을 개최하여 총 24명 예술가들의 작품 150여 점을 전시했다. 그러나 정부의 허가없이 진행된 전시로, 바로 경찰에 의해 폐쇄되었고, 이에 작가들은 크게 반발했다. 싱싱화파의 구성원들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국가 시스템에서 인정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 양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99藝術網 홈페이지 http://www.99ys.com/home/1970/01/01/08/81897.html (최종검색일: 2022. 5. 20).

21 艺术档案 홈페이지 https://www.artda.cn/wenxiandangan-c-240.html (최종검색일: 2022. 7. 3).

22 楊瑩, 「上海抽象藝術研究」(華東師範大學大學 박사학위 논문, 2010), pp. 23-24.

23 중국에서의 도시화는 사회경제적 변화 과정으로 농업인구의 비농업화·도시 인구규모의 확장·도시용지의교외지역으로의 확장·도시 수의 증가 및 도시의 사회·경제·기술 변혁의 향촌 진입과정 등을 포함한다.

24 19세기 프랑스 농촌 풍경화 전시회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 처음 개최한 서양화 전시회로 1978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각각 개최되었다. 주로 프랑스 바르비종파와 인상파의 작품을 선보였으며, 당시 예술가들의 창작과 사상 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25 위요우한은 중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인물로, 1990년대 초 중국에서 유행한 정치 팝아트(Chinese Political Pop Art)의 선구자이다. 1989년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팝 계열의 작품을 선보이기에 앞서, 1980년대 초부터상하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추상회화 실험을 이끌었다.

26 石薇薇, 「丁乙：“十”刻准备着新的可能」, 『艺术外滩ARTBUND』(2021. 12. 17).

27 曾炎, 「丁乙：關在格子裡的理性與情感」, 『三聯生活周刊』(2017. 12. 5).

28 栗憲庭, 「前衛藝術」, 『中國美術報』 35(1988), p. 1.

29 丁乙, 「抽象的歷程」, 『個體經驗：1989-2000年中國當代藝術實踐的對話與敘述』(嶺南美術出版社, 2013), p.126.

30 현재도 중국에서는 도시 개발로 인해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옮기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작가들이 모여서 형성했던 베이징의 원명원(圓明園) 화가촌은 도시개발로 인해 철거되었고, 이후 작가들은 베이징798·송좡(宋莊) 등 새로운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외에, 798 예술구 부근의 도·농(城鄉) 경계 지역에 위치하던 헤이차오（黑橋）예술구 역시 지난 2015년 도시개발로 인해 철거되어 예술가를 포함한 8만 여명의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歌德學院（中國）홈페이지 https://www.goethe.de/ins/cn/zh/kul/mag/20719809.html (최종검색일: 2022. 5. 20).

31 丁乙, 「馬嘯鴻對話丁乙」, 『丁乙：何所示』(上海人民美術出版社, 2015), p. 113.

32 TANC, 「因光而变化的“十示”, 丁乙的三十年探索」, 『TANC藝術新聞中文版』(2021. 1. 28).

33 TANC, 앞의 자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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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딩이는 중국 동시대 추상회화의 선구자이자, 중국 85 신사조 미술운동(85 New Wave movement)의 주요 구성원이다.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유럽·일본 등지로 유학을 통해 서구 현대미술의 이념과 형식을 받아들여 추상회화를 실험한 일군의 작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화단에서 1950대 이후 추상미술이 줄곧 주류적 위치를 차지해 왔던 것에 반해, 중국의 경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

립 이후 공산당의 정치노선에 따라 문예 방침에 있어 사회주의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를 표방하며 더 이상 공식적으로 모더니즘 미술실험을 전개해 나갈 수 없었다. 이후 1978년 덩샤오핑에 의해 추진된 개혁개방으로 인해 변화된 시대 분위기속에서 서구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동시다발적으로 유입되었고,그 영향으로 추상미술 실험도 재개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전개된 딩이의 작업을 창작 기법의 변화와 화면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점 변화에 따라3 단계로 분류하고 각 시기별 기법과 특징을 시대상에 빗대어 분석하였다. 나아가딩이의 추상회화 전개 과정을 통해 개혁개방 이후 중국 현대 추상미술이 걸어온길을 살펴본다.

첫 번째 시기인 평시 단계(1980-1998)에서 딩이는 몬드리안과 프랭크 스텔라의영향을 받아 형식적 정밀함이 돋보이는 ‘十’ 자 추상회화를 선보인다. 그는 디자인이 지닌 차가운 속성에 회화 고유의 표현성을 접목시키고자 했는데, 테이프·자등의 도구를 사용해 인쇄물과 같은 정밀한 화면을 구현했다. 딩이는 모방론에 근거한 고전주의 회화의 이념과 형식을 거부하고자 ‘十’ 자 및 그 변형인 ‘X’ 기호를통해 순수 조형요소를 근간으로 하는 추상회화를 추구하였다. 이어서, 부감 단계(1999-2012) 창작에서는 형식적 추상을 넘어서 중국의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생겨난 변화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화면에 담았다. 이 시기 작품에도 ‘十’ 자 기호가등장하는데, 도시의 네온사인을 연상케 하는 자극적인 색감을 사용하여, 고층 빌딩 위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야경과 변형된 도시의 지형도를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표방하지만, 작가의 현실주의적 태도와 시선을 동시에 담았다. 마지막 앙시 단계(2013- )에서는 시점의 변화외에 색채·재료·기법 등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그간 고수해온 평면회화의 형식에서 벗어나, 목판화의 기법과 회화를 결합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다.또한 시력감퇴라는 신체적 한계와 내면적 성찰에서 비롯하여 과거 화면에서 명확하게 묘사되었던 ‘十’ 자의 윤곽선이 모호해졌으며, 눈에 자극을 주는 형광색의 사용을 중단했다.

본고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十’ 자 기호를 중심으로 전개해온 딩이의 추상회화를 집중 조명하였다.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형식주의적 답습에서 시작된 딩이의 ‘十’자 회화는 중국 도시화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담아내는 매개로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또한 현재는 작품을 통해 작가 자신의 삶과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딩이가 지난 30여 년간 추구한 추상미술로의 여정은 한마디로 ‘형식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차가운 추상’에서 ‘뜨거운 추상’으로의 전환이라 형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단순 작가 개인의 창작을 넘어, 개혁개방 이후 중국 추상미술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축소판이자, 동시에 1980년대 이후 중국의 도시화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